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롱 황제 (문단 편집) === 초기 === 본명은 완복란 또는 완복종. 후에 흥조로 추존된 [[응우옌푹루언]]과 응우옌티호안(Nguyễn Thị Hoàn, 阮氏環, 완씨환)의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응우옌푹루언은 당시 [[광남국]]의 왕 세종 [[응우옌푹코앗]]의 차남으로 후에 [[대남국]](응우옌 왕조)이 세워진 후 편찬된 기록에 따르면 1765년 세종이 사망했을 당시엔 세종의 세자였던 효선왕[* 효선왕(孝宣王)은 사후에 추존된 시호로 본명은 응우옌푹하오(Nguyễn Phúc Hạo, 阮福昊, 완복호).]이 이전에 죽었기 때문에 세종은 흥조를 즉위시키라고 유조를 남겼다. 그러나 권신 즈엉푹로안이 유조를 조작해 세종의 16남인 [[응우옌푹투언]](예종)을 즉위시켰다. 단 일부 학자들은 흥조가 후계자로 지정된 건 대남국에 세워진 후에야 나온 관점, 즉 자롱 황제가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이미 아버지 때부터 즉위해야 했던 상황' 이란 설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선왕 사후 응우옌푹코앗은 예종을 후사로 정했고 선왕의 장남인 [[응우옌푹즈엉]](목왕)을 지정하는 것도 고려했다고 한다. 참고로 목왕은 [[타이득|응우옌반냑]]이 [[떠이선 농민 봉기]]를 일으켜 예종을 실각시켰을 때 그를 대신할 괴뢰 왕으로 옹립될만큼 명성이 높았으나 응우옌푹아인은 당시엔 그저 일개 황족이었을 뿐이었다. 세종 사후 응우옌푹아인은 겨우 4살에 불과했고 권력 다툼에 패한 아버지와 함께 궁중에 유폐당했다. 아버지 응우옌푹루언은 얼마 안가 죽었고 즉위한 예종은 당시 11살에 불과한 어린 아이였기에 뭐가 뭔지 몰라 정사에 신경쓰지 않았으며 자연스레 그를 옹립하여 공신이 된 즈엉푹로안이 모든 정권을 장악했고 학정을 일삼아[* 그 농도가 매우 심해 장[[진회]]라 부를 정도였다. 즈엉푹로안을 우리 한자음으로 읽으면 장복만이다.] 당시 광남의 백성들에게 원망을 샀다. 결국 1771년 [[타이득|응우옌반냑]], 응우옌반르, [[꽝쭝|응우옌반후에]] 삼형제가 난을 일으키자 각지의 호응을 얻었고 1774년엔 광남에서 반란이 일어났단 소식을 접한 북쪽의 통치자 [[찐섬]]도 호앙응우푹을 내세워 삼형제와 연합하고 광남을 공격했다. 응우옌푹아인은 예종을 보좌해 쟈딘으로 피신했고 그 공으로 관직을 얻고 군부대 하나의 통솔권을 받는다. 대남국 사료엔 이때 응우옌푹아인의 나이가 어렸지만 기략이 좋아 여러 장군들과 예종의 기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이어서 1771년 [[떠이선 왕조]]의 왕[* 응우옌반냑은 당시 서산왕(西山王)을 칭했고 1788년에 황제로 즉위한다.]을 칭한 응우옌반냑이 동생인 응우옌반르와 [[꽝쭝|응우옌반후에]]를 내세워 쟈딘을 공격하자 응우옌푹아인은 태상왕 예종을 지키고 현왕인 목왕은 현재의 빈롱성에서 농성하다 패배해 응우옌반후에에게 항복한 후 처형당했고 태상왕 예종마저 도주하다 많은 응우옌씨 일족과 처형당해 광남 응우옌씨 정권은 멸망했다. 응우옌푹아인은 이 처형식에서 홀로 살아남아 [[https://zh.wikipedia.org/wiki/%E8%BF%AA%E7%9F%B3%E5%B8%82|적석]]으로 도망갔고 천주교 선도자인 파올로(Paul Nghi)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후 [[https://zh.wikipedia.org/wiki/%E6%B2%B3%E5%83%8A%E7%9C%81|하띠엔]]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주고 최고의 공신이 되는 피뇨 선교사를 만났다. 파올로가 피뇨에게 일련의 사건을 말해줘 피뇨는 망국의 왕손 응우옌푹아인을 도왔다. 자세한 내용은 응우옌푹아인이 자신이 떠이선에게 이겨 전국을 통일하면 전국에 천주교를 제한없이 전파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응우옌푹아인을 돕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이후 그들은 숲으로 들어가 떠이선 군의 추적을 피해 [[https://zh.wikipedia.org/wiki/%E5%9C%9F%E7%8F%A0%E5%B3%B6|따오토]]를 기점으로 삼아 부흥운동을 전개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